고르는 사람과 미는 사람만 남는다
AI가 정답 있는 문제를 흡수한 뒤 남는 건 무엇을 고를지 정하는 판단과 그 판단을 끝까지 미는 실행이다. AIX에서 지켜본 동료들의 격차와 이직 이력에서 같은 결론을 확인한다.
최근 실리콘밸리의 한 창업자가 쓴 커리어 조언 글을 읽었다. 문장 하나가 오래 남았다. AI 모델은 손실 함수를 쓸 수 있는 모든 일에서 좋아지고, 학교는 대부분 손실 함수로 이루어져 있다는 문장이었다. 정답이 정해져 있고 그 정답과 비교해 채점하는 문제, 그게 학교라는 건 새삼스럽지 않다. 새삼스러운 건 다음 문장이었다. 회사의 일도 상당수가 같은 구조였다는 것.
그 글의 구체적인 장면들은 내 경험과 거리가 멀다. 억대 연봉의 퀀트 오퍼, 실리콘밸리 프런티어 랩 사이의 이직, 그런 이야기는 내가 아는 세계가 아니다. 하지만 그 밑에 깔린 구조는 낯설지 않았다. 최근 몇 년 사이 내가 하는 일도 채점 가능한 부분과 채점 불가능한 부분으로 갈라지는 걸 매일 지켜봤기 때문이다.
이 글은 그 갈라짐을 내 자리에서 다시 따라간다. 회사가 채점해 온 일이 정확히 무엇이었는지, AIX 조직에서 그 채점표가 사라지는 순간을 직접 봤을 때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이직 이력을 지금 와서 줄 세워 보면 어떤 기준으로 갈렸는지를 본다. 결론부터 말한다. 채점표가 있던 자리는 에이전트가 가져갔고, 남은 자리는 원래도 채점이 안 됐던 자리다. 무엇을 만들지 말 것인가를 정하는 감각과, 그 판단을 끝까지 미는 마지막 마일. 이 둘이 지금 커리어의 진짜 스펙이다.
학교와 회사가 나눠 쓰던 채점표
PM으로 일하며 채점 가능한 일은 생각보다 많았다. PRD에 적힌 대로 화면이 나오는가, 정해진 스펙대로 API가 응답하는가, QA 체크리스트의 항목이 전부 통과했는가. 전부 정답이 미리 있고 그 정답과 실물을 대조하는 일이었다. 기획자와 개발자가 주고받는 대화의 절반은 사실 이 대조 작업이었다. 정답이 있으니 잘했는지 못했는지도 명확했다.
지금은 이 대조 작업의 상당 부분을 에이전트가 가져갔다. 스펙을 주면 구현체가 나오고, 통과 기준을 주면 테스트가 돌아간다. 예전 칼럼에서 이 변화를 워크플로우와 생태계의 이동으로 정리한 적이 있는데, 그 이동의 더 근본적인 층위가 이거였다. 모델이 좋아진 게 아니라 채점 가능한 일의 값이 0으로 수렴한 것이다. 스펙대로 구현하는 능력, 정해진 프로세스를 정확히 따르는 능력은 여전히 필요하지만 더는 희소하지 않다.
희소한 건 채점표 자체를 만드는 일이다. 무엇을 스펙으로 적을지, 어떤 기준을 통과로 볼지, 애초에 이 문제를 풀 가치가 있는지. 이건 대조가 아니라 판단이고, 판단에는 비교할 정답이 없다. 채점표가 있던 일의 값은 0에 가까워졌고, 채점표가 없던 일의 값만 남았다. 학교와 회사가 오랫동안 같은 방식으로 사람을 평가해 온 이유도 여기 있었다. 둘 다 채점 가능한 일을 잘하는 사람을 걸러내는 데는 능숙했지만, 채점표 자체를 만드는 사람을 걸러내는 방법은 따로 갖고 있지 않았다.
AIX에서 본 격차의 위치
이 이동을 이론으로 먼저 안 게 아니다. 지금 다니는 조직의 이름부터가 AIX다. 전 직군의 반복 업무를 에이전트로 압축하는 사내 툴을 만들고 도입과 확산까지 책임지는 자리에 있다 보니, 같은 도구를 받은 사람들 사이에서 격차가 벌어지는 지점을 매주 지켜보게 된다. 처음 몇 주의 격차는 예상한 자리에 있었다. 프롬프트를 얼마나 구체적으로 쓰는가, 도구의 옵션을 얼마나 파악했는가. 도구 숙련도의 격차였다.
그런데 그 격차는 오래가지 않았다. 몇 주가 지나자 다들 비슷한 수준으로 도구를 다뤘고, 대신 전혀 다른 자리에서 새 격차가 생겼다. 어떤 사람은 자기 업무 중 정말 반복적이고 판단이 필요 없는 부분만 골라 자동화에 넘겼다. 어떤 사람은 도구가 좋아졌다는 이유로 판단이 필요한 부분까지 통째로 넘기려 했고, 결과물을 검수하는 데 원래 걸리던 시간보다 더 오래 걸렸다. 도구는 같았는데 결과는 갈렸다.
갈림의 기준은 코딩 실력도 프롬프트 스킬도 아니었다. 이 업무의 어느 부분이 정답이 있는 부분이고 어느 부분이 판단이 필요한 부분인지, 그 경계를 먼저 그을 수 있는가였다. 도구 숙련도의 격차는 몇 주 만에 사라졌고, 문제를 쪼개는 감각의 격차만 남았다. 채점 가능한 일이 사라진 자리에서 사람들의 성과가 갈리는 지점을 실시간으로 보고 있다는 점에서, 이건 나에게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 매주의 관찰 기록에 가깝다.
이직 이력이 증명하는 것
이 기준을 갖고 그동안의 이직을 다시 줄 세워 봤다. 2020년 창업으로 시작해 로켓펀치, 일렉버리, 그린랩스, 카카오페이를 거쳐 지금 슈퍼센트 AIX에 있다. 이력서만 보면 스타트업에서 대기업으로 옮겨가는 흔한 궤적처럼 보인다. 그런데 각 이동의 이유를 다시 떠올려 보면 규모나 연봉이 기준이었던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창업 초기의 ANTIEGG는 무엇을 만들어야 할지조차 정해지지 않은 자리였다. 일렉버리는 조직 내 유일한 PO로 합류해 프로덕트 체계 자체를 처음부터 세워야 했던 자리였다. 그린랩스는 이미 쌓인 농민 데이터를 수익으로 어떻게 바꿀지, 정답이 없는 그로스 문제를 다루는 자리였다. 반대로 로켓펀치는 목표가 이미 명확했던 자리였다. 매출과 리텐션이라는 숫자가 걸려 있었고, 거기서는 판단보다 집요한 실행이 더 중요했다. 카카오페이는 흥미로운 대조를 준 자리였다. 대기업 금융이라 정해진 프로세스와 규제가 많았지만, 마이데이터라는 처음 다뤄보는 1차 데이터로 문제를 정의하는 일은 여전히 판단의 영역이었다.
지금 슈퍼센트에서 하는 일은 단일 프로덕트의 스펙을 채점받는 자리가 아니라 조직이 일하는 방식 자체를 다시 설계하는 자리다. 줄을 세워 놓고 보니 매번 이미 답이 있는 자리에서 답이 없는 자리로 옮겨간 궤적이었다. 당시엔 이렇게 정리하며 옮긴 게 아니었다. 다음 자리가 더 재미있어 보였을 뿐이다. 하지만 재미의 정체를 뜯어보면 매번 같은 자리, 채점표가 없는 자리였다.
마지막 마일은 여전히 사람의 몫
그런데 판단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판단을 내린 다음에 그걸 끝까지 밀어붙이는 자리가 따로 있다. 이전 글에서 워크플로우를 다섯 단계로 정리하며 framing이 가장 비싼 단계라고 쓴 적이 있는데, 다시 보니 그건 절반만 맞는 말이었다. framing에서 무엇을 만들지 정하는 판단만큼, verify에서 다른 컨텍스트로 돌아와 자기 결과물을 다시 보는 것도 채점표가 없는 일이다. 둘 다 에이전트가 대신 서지 않는 자리다.
로켓펀치에서 매출을 끌어올리던 시기를 돌이켜보면 판단은 이미 초반에 끝나 있었다. 남은 건 그 판단을 포기하지 않고 반복해서 미는 일이었다. 지금도 다르지 않다. 에이전트가 구현을 대신 해주는 세상에서 사람이 남길 수 있는 건 결과물을 한 번 더 들여다보고, 어색한 자리를 찾아내고, 다음 판단을 또 한 번 내리는 일이다. 이 두 가지, 문제를 고르는 판단과 그 판단을 끝까지 미는 실행은 손실 함수를 쓸 수 없는 일이라는 점에서 같은 자리에 있다.
채점표가 사라진 자리에서 사람에게 남은 건 이 두 가지뿐이다. 무엇을 만들지 정하는 판단, 그리고 그 판단을 끝까지 미는 마지막 마일. 둘 중 하나만 잘해서는 부족하다. 판단이 좋아도 마지막 마일에서 손을 놓으면 평범한 결과물이 나오고, 마지막 마일을 아무리 밀어도 판단이 틀렸으면 엉뚱한 곳에 도착한다.
정리하면 이렇다. 학교와 회사가 오랫동안 채점해 온 일은 정답과 대조하는 일이었고, 그 일의 값은 에이전트 앞에서 0으로 수렴했다. 남은 건 채점표를 직접 그리는 판단과, 그 판단을 끝까지 미는 실행이다. AIX에서 매주 보는 격차도, 이직 이력도 결국 같은 두 자리에서 갈렸다.
다만 한 가지는 인정해야 한다. 이 이동들을 이렇게 깔끔하게 줄 세우는 건 지나고 나서야 가능한 정리다. 그 순간에는 이런 기준을 의식하지 못했고, 그냥 다음 자리가 더 재미있어 보여서 옮긴 경우가 더 많았다. 재미라는 감각이 사실 이 기준을 미리 감지하고 있었던 건지, 아니면 지금 와서 편한 이야기를 골라 붙인 건지는 나도 확신할 수 없다.
확실한 건 하나다. 무엇을 만들지는 이제 아무도 대신 정해주지 않는다. 내가 직접 고르고, 고른 다음에는 끝까지 밀어야 한다. 커리어 조언을 읽고 남은 건 실리콘밸리의 이야기가 아니라 그 문장 하나였다. 고르는 사람과 미는 사람만 남는다.